존 윈스럽 언덕 위의 도시
1630년 봄, 대서양을 건너던 배에는 단순히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가는 사람들만 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대륙에서 이전과 다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중심에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의 지도자 존 윈스럽(John Winthrop)이 있었습니다.
윈스럽은 새로운 땅에 정착하는 청교도들에게 자신들이 만드는 공동체가 세상의 시선을 받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유명한 표현이 바로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입니다.
오늘날 이 표현은 미국이 다른 국가와 구별되는 특별한 역사적 사명을 가진 나라라는 아메리카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1630년 윈스럽이 말했던 ‘언덕 위의 도시’는 단순히 미국이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시선을 받는 공동체인 만큼 더 높은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고에 가까웠습니다.
이 종교적인 표현이 수백 년 동안 어떻게 미국의 국가 정체성과 정치적 사명 의식으로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면, 아메리카 예외주의가 만들어진 과정도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존 윈스럽은 누구였을까
존 윈스럽은 1588년 영국에서 태어난 법률가이자 청교도 지도자였습니다.
17세기 초 영국 사회에서는 영국국교회를 둘러싼 종교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영국국교회에 남아 있는 가톨릭적 전통과 의식을 더욱 철저하게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윈스럽 역시 이러한 청교도적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정치·종교 환경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신앙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일부 청교도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북아메리카 이주를 선택했습니다.
1630년 윈스럽은 수백 명의 이주민과 함께 뉴잉글랜드로 향했고 이후 매사추세츠만 식민지(Massachusetts Bay Colony)를 이끄는 핵심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에 도착했던 필그림과 1630년 윈스럽이 이끌었던 청교도 이주민은 같은 집단이 아닙니다.
플리머스 식민지와 매사추세츠만 식민지는 모두 뉴잉글랜드 청교도 역사와 연결되지만 서로 다른 시기와 배경에서 만들어졌습니다.
1630년 아벨라호와 A Model of Christian Charity
윈스럽의 ‘언덕 위의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유명한 글 A Model of Christian Charity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 글은 전통적으로 1630년 윈스럽과 청교도 이주민들이 아벨라호(Arbella)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던 시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이 설교가 전달되었는지를 둘러싼 역사학적 논의도 존재하지만, 이 문서가 초기 매사추세츠 청교도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글의 대부분이 국가의 위대함이나 영토 확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윈스럽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관계,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의무, 자선, 부채, 상호부조와 같은 문제를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그에게 새로운 식민지는 단순히 개인이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책임을 나누는 종교적·사회적 실험이었습니다.
청교도의 언약 공동체란 무엇일까
윈스럽의 사상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전문용어 가운데 하나가 언약 공동체(Covenant Community)입니다.
청교도 신학에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 언약(Covenant)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맺었던 것처럼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역시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특별하다’는 말은 무조건적인 특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특별한 관계를 맺은 만큼 더 엄격한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 핵심 개념 | 의미 |
|---|---|
| Covenant | 하나님과 공동체 사이의 언약 |
| Christian Charity |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사랑과 상호부조 |
| Collective Responsibility | 개인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책임 |
| Moral Example | 다른 사회에 보여주는 도덕적 모범 |
| City upon a Hill | 세상의 시선을 받는 공동체 |
윈스럽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돕고 종교적 원칙을 지킨다면 새로운 사회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개인의 욕심과 사적 이익만 추구하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공동체 전체가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따라서 초기 청교도 사상에서 ‘선택받은 공동체’라는 개념은 특권보다 책임에 더 가까운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덕 위의 도시’의 원래 의미
윈스럽의 글에서 가장 유명한 표현이 바로 City upon a Hill입니다.
이 표현의 배경에는 신약성서 마태복음 5장에 등장하는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한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윈스럽은 자신들이 만드는 공동체가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처럼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성공도 보이지만 실패 역시 숨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윈스럽은 공동체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따라서 ‘언덕 위의 도시’는 처음부터 국가적 우월성을 선언하는 표현이라기보다 도덕적 책임과 실패 가능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종교적 은유였습니다.
언덕 위의 도시와 아메리카 예외주의
수백 년 뒤 이 표현은 완전히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아메리카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입니다.
아메리카 예외주의는 미국이 다른 국가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정치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의미합니다.
다만 이 개념에는 여러 층위가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이 유럽과 다른 사회·정치적 발전 과정을 거쳤다는 역사학적 분석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 공화주의를 세계에 보여줘야 할 특별한 사명을 가진 국가라는 정치적 믿음입니다.
윈스럽의 ‘언덕 위의 도시’는 후자의 개념과 강하게 연결됩니다.
즉,
우리는 세계의 시선을 받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회에 하나의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라는 구조가 17세기 청교도 공동체에서 후대 미국의 국가 정체성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윈스럽이 미국 예외주의를 만든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시대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1630년에는 아직 오늘날 우리가 아는 미합중국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독립선언은 1776년에 발표되었고 미국 연방헌법은 1787년에 작성되었습니다.
윈스럽의 시대는 그보다 약 150년이나 앞섭니다.
따라서 윈스럽이 오늘날의 의미에서 ‘미국은 세계를 이끌 특별한 국가다’라고 주장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존 윈스럽의 ‘언덕 위의 도시’는 아메리카 예외주의의 직접적인 선언이 아니라 후대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국가적 사명을 설명할 때 다시 사용한 중요한 사상적 원형입니다.
| 시대 | 언덕 위의 도시가 가진 의미 |
|---|---|
| 1630년대 | 청교도 언약 공동체의 책임 |
| 식민지 시대 | 뉴잉글랜드 종교 공동체의 정체성 |
| 독립혁명 이후 | 새로운 공화국의 역사적 실험 |
| 19세기 | 미국의 팽창과 국가적 사명 |
| 20세기 | 자유민주주의의 세계적 모범 |
| 현대 | 아메리카 예외주의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 |
이렇게 보면 하나의 종교적 은유가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국가적 상징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코리의 중간생각
여기까지 살펴보면 저는 한 가지가 특히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윈스럽은 “우리는 특별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특별한 위치에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엄격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책임’보다는 ‘특별함’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았습니다.
바로 이 변화가 미국 예외주의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매사추세츠는 이상적인 공동체였을까
윈스럽이 꿈꿨던 매사추세츠만 식민지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였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종교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제한적인 사회였습니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공동체의 종교적 통일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자신들의 신앙 질서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앤 허친슨(Anne Hutchinson)**입니다.
허친슨은 보스턴에서 종교 토론 모임을 열면서 일부 청교도 성직자들의 가르침을 비판했습니다.
그녀의 영향력이 커지자 식민지 지도자들은 이를 공동체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했습니다.
1637년 앤 허친슨은 존 윈스럽이 참여한 매사추세츠 일반법원의 재판을 받았고 결국 식민지에서 추방되었습니다.
로저 윌리엄스와 종교 자유의 또 다른 길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 역시 매사추세츠 청교도 사회와 충돌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윌리엄스는 정부가 개인의 종교적 신앙을 강제로 통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교회와 정치권력이 지나치게 결합하는 것도 비판했습니다.
결국 그는 매사추세츠에서 추방되었고 이후 로드아일랜드 지역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역사가 하나의 사상에서 직선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한쪽에는 윈스럽의 언약 공동체와 공동체적 질서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로저 윌리엄스가 강조한 종교적 양심과 개인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이 서로 다른 전통이 충돌하고 경쟁하면서 미국의 종교 자유와 정치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한줄팁: ‘언덕 위의 도시’를 공부할 때는 ‘선택받은 미국’보다 먼저 **‘세상의 시선을 받기 때문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공동체’**라는 원래 의미를 기억하면 전체 흐름이 훨씬 쉽게 이해됩니다.
청교도 사상은 어떻게 미국의 사명 의식으로 발전했을까
미국의 독립이 가까워지면서 종교적인 ‘특별한 공동체’ 개념은 점차 정치적인 언어로 변했습니다.
미국 독립혁명 당시 식민지인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공화정을 실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화주의(Republicanism)**와 자연권(Natural Rights) 사상이 미국 정치의 핵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정치 실험이 성공할 경우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 역시 확산되었습니다.
이렇게 청교도 시대의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고방식은,
새로운 공화국의 성공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라는 정치적 메시지와 결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윈스럽에서 미국 독립혁명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단순한 계보는 아닙니다.
하지만 두 시대 모두 미국 사회를 하나의 **모범적 실험(Model Society)**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명백한 운명과 미국의 특별한 사명
19세기가 되면 미국의 사명 의식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대표적인 개념이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입니다.
미국이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로 확장하는 것이 역사적이고 섭리적인 운명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시기 미국의 특별한 사명이라는 사고는 더 이상 종교 공동체의 내부 윤리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영토 확장과 국가 성장의 논리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예외주의의 두 얼굴도 나타납니다.
한쪽에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한다는 이상이 강조되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러한 사명 의식이 영토 확장, 원주민 강제 이주, 멕시코와의 전쟁 같은 현실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결합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아메리카 예외주의를 이해할 때는 이상적인 언어와 실제 역사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존 F. 케네디가 다시 꺼낸 언덕 위의 도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언덕 위의 도시’는 미국 정치에서 다시 강력한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입니다.
대통령 취임을 앞둔 1961년 1월 케네디는 매사추세츠 주 의회 연설에서 윈스럽의 언덕 위의 도시를 언급했습니다.
케네디는 이 표현을 단순히 미국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말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직자가 역사와 국민 앞에서 높은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이 점에서 케네디의 해석은 윈스럽의 원래 메시지와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책임의 논리입니다.
로널드 레이건의 ‘빛나는 언덕 위의 도시’
오늘날 ‘언덕 위의 도시’를 미국 예외주의와 연결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입니다.
레이건은 이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Shining City upon a Hill, 즉 ‘빛나는 언덕 위의 도시’라는 이미지로 발전시켰습니다.
레이건이 이야기한 도시는 자유롭고 번영하며 세계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희망의 미국이었습니다.
특히 대통령 임기 마지막인 1989년 고별연설에서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상상해 온 ‘빛나는 도시’를 다시 설명했습니다.
여기에서 윈스럽의 원래 메시지와 중요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1630년 윈스럽에게 언덕 위의 도시는,
“우리가 실패하면 모든 사람이 그 실패를 보게 될 것이다.”
라는 경고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레이건 시대에는,
“미국은 세계가 바라보는 자유와 희망의 모델이다.”
라는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가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 변화가 현대 아메리카 예외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언덕 위의 도시는 어떻게 350년 동안 변했을까
‘언덕 위의 도시’의 의미 변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청교도 언약 공동체
↓
도덕적 책임
↓
세상이 바라보는 모범 공동체
↓
새로운 미국 공화국의 역사적 실험
↓
미국의 특별한 국가적 사명
↓
자유와 민주주의의 세계적 모델
↓
현대 아메리카 예외주의
하지만 이 과정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직선적인 발전은 아니었습니다.
윈스럽의 설교가 17세기부터 모든 미국인이 알고 있던 국가적 선언문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후대의 역사학자와 정치인들이 윈스럽의 표현을 다시 발견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면서 그 상징성이 훨씬 커졌습니다.
따라서 ‘언덕 위의 도시’는 과거의 문장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라기보다 각 시대의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미국의 모습을 투영한 역사적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 예외주의가 가진 두 얼굴
아메리카 예외주의는 미국 역사에서 긍정적인 역할과 부정적인 역할을 동시에 해왔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미국 사회가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와 같은 가치를 더 높은 수준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자기 기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세계가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미국 역시 자신이 내세운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압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윈스럽의 원래 메시지와도 어느 정도 연결됩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국가가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생각은 쉽게,
우리의 제도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
라는 사고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른 지역에도 우리의 가치와 제도를 확산할 권리가 있다
라는 논리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대 역사학과 정치학에서는 아메리카 예외주의를 단순한 사실이라기보다 미국인들이 자국의 역사와 국가적 역할을 이해하는 강력한 정치적·문화적 서사로 분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메리카 예외주의의 기원을 윈스럽 한 사람에게서 찾을 수 없는 이유
미국 예외주의는 하나의 사건이나 한 사람에게서 만들어진 사상이 아닙니다.
여러 시대의 서로 다른 전통이 겹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청교도들에게서는 언약 공동체와 모범 사회라는 사고가 나왔습니다.
독립혁명에서는 자연권과 공화주의가 등장했습니다.
19세기에는 Manifest Destiny와 서부 팽창이 결합했습니다.
20세기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세계 지도국이라는 국가적 사명 의식이 추가되었습니다.
따라서 윈스럽의 ‘언덕 위의 도시’를 모든 미국 예외주의의 직접적인 출발점이라고 보는 것보다는,
미국은 세계 앞에서 특별한 책임과 사명을 가져야 한다는 사고의 초기 종교적 원형
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욱 정확합니다.
‘특별한 나라’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지켜보는 세상’이었다
윈스럽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면 현대 미국 정치에서 사용되는 ‘언덕 위의 도시’와 원래의 의미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윈스럽에게 중요한 것은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숨을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좋은 행동도 보입니다.
실패도 보입니다.
위선도 보입니다.
그래서 언덕 위의 도시는 특권의 상징이 아니라 책임의 상징에 더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정치적·문화적 환경이 변화했고, 이 문장 역시 새로운 의미를 얻었습니다.
청교도 공동체의 책임을 이야기하던 표현은 미국 공화국의 실험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고, 다시 세계적인 자유민주주의의 사명을 이야기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현대 미국 예외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상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존 윈스럽이 꿈꾸었던 ‘언덕 위의 도시’는 높은 도덕적 기준과 공동체적 책임을 내세운 이상적인 청교도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뉴잉글랜드의 역사는 그 이상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메이플라워 이후 식민지가 빠르게 확장되면서 종교적 통일성을 지키려는 움직임과 개인의 신앙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충돌했고, 앤 허친슨과 로저 윌리엄스의 추방처럼 공동체 내부의 긴장도 점점 커졌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청교도 사회의 빛과 그림자|메이플라워 그 이후 뉴잉글랜드의 확장과 종교 갈등」 을 함께 살펴보면, 초기 미국 사회가 어떻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며 성장했는지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코리의 생각
존 윈스럽의 ‘언덕 위의 도시’를 단순히 미국 우월주의의 시작이라고 보면 이 이야기의 중요한 절반을 놓치게 됩니다.
1630년 윈스럽이 두려워했던 것은 자신의 공동체가 평범한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선언했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원래의 ‘특별함’에는 항상 책임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후 미국은 이 표현을 여러 번 다시 해석했습니다.
존 F. 케네디에게 언덕 위의 도시는 공적 책임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에게는 자유와 번영, 희망을 보여주는 ‘빛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덕 위의 도시’를 미국이 실제로 다른 나라보다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장으로 보기보다는,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해 온 문장
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1630년 청교도 지도자의 설교에 등장한 하나의 표현이 약 4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미국의 정체성과 아메리카 예외주의를 이야기할 때 계속 등장하는 것입니다.
존 윈스럽 언덕 위의 도시 FAQ
Q1. 존 윈스럽이 아메리카 예외주의를 처음 만든 사람인가요?
그렇게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아메리카 예외주의는 미국 독립 이후 여러 정치·종교·사회적 전통이 결합하면서 발전한 개념입니다. 다만 윈스럽의 ‘언덕 위의 도시’는 미국이 세계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사명 의식의 중요한 초기 종교적 원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Q2. ‘언덕 위의 도시’는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는 뜻인가요?
윈스럽의 원래 의미는 우월성보다 책임에 가까웠습니다. 공동체가 세상의 시선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세운 종교적·도덕적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실패 역시 모든 사람에게 드러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Q3. 왜 로널드 레이건의 ‘빛나는 언덕 위의 도시’가 유명한가요?
레이건이 윈스럽의 종교적 은유를 현대 미국의 자유·번영·희망을 상징하는 정치적 이미지로 적극적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89년 고별연설에서도 이 표현을 사용하면서 ‘Shining City upon a Hill’은 현대 아메리카 예외주의를 대표하는 상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존 윈스럽 언덕 위의 도시 참고자료
John Winthrop, A Model of Christian Charity
Massachusetts Historical Society, Winthrop Family Papers
Teaching American History, A Model of Christian Charity
John F. Kennedy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 Massachusetts State House Address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Farewell Address to the Nation
National Park Service, Anne Hutchinson and Roger Williams 관련 역사자료
Encyclopaedia Britannica, John Winthrop
The American Yawp, Colonial Society and American Political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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